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고골 (문단 편집) == 평가 == 러시아 문학사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로 현재까지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등과 함께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며 대문호로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 중 하나이며 고골 센터라는 이름의 극단도 있을 정도다. 고골의 후배 격인 도스토옙스키는 고골의 작품인 '외투'에 빗대어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표현하며 고골을 칭송하였다. 당연히 러시아 문학 전공자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이반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 입문 희망자에게 많이 추천되는 작가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중증 도박중독 증세를 보였던 수구꼴통 노인]]이나 [[레프 톨스토이|농민이기를 희망하던 귀족 출신 노인]]이 쓴 글보다 쉽게 읽히고 분량이 길지 않으며 유머러스한 재미도 있다. 언어 감각이 대단히 뛰어났는데, 그는 러시아 제국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로서 우크라이나어를 사투리 취급하던 러시아 제국의 관념에 따라 표준어인 러시아어로만 창작활동을 했지만, 우크라이나어 구사자의 감각을 통해 러시아어에서 잘 쓰이지 않던 옛스러운 표현들을 아주 맛깔나게 살려내며 그 언어적 감각의 천재성으로 칭송받는 경지를 구현했다. 때문에 고골의 작품은 번역으로 특유의 스타일을 제대로 전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개인적으로 푸시킨의 추종자이기도 했고, 푸시킨이라는 천재를 낳은 문학어로서 러시아어의 위대함을 여러차례 예찬하며 우크라이나는 물론이요 체코까지도 러시아어가 널리 쓰여야 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고골 자신은 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자신의 [[카자크]] 혈통을 강하게 인식하였으나 그를 우크라이나 작가로 알아줄 수만은 없다. 그는 스스로 '야노우스키'를 버리며 고골(우크라이나어로는 '호홀')을 썼고, 고골 자신이 드러낸 국가관에 따르면 같은 종교와 혈통,언어를 공유하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같은 민족이었고,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와 다른 언어가 아니라 중세 러시아어의 특징을 간직한 사투리지만 폴란드어가 유입되면서 러시아어와 이질성을 보이며 민족의 단결을 저해하는 분파주의적 요소였다. 물론 고골은 작품 속에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애향심과 애정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긴 했지만, 이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별개의 민족이라는 인식보다는 서구화와 도시의 성장이라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 나타났던 전통적 가치체계의 붕괴에 대한 냉소적 시선 속에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유럽화 지향의 상징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계적이고 속물적이며 허영에 찌든 위선적이고 타락한 도시로 상정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정교적 미덕과 순수가 남아있는 낭만주의적 이상향으로 상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뿐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다른 민족이라는 인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어리숙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우크라이나인과 대비되는 영악하고 속물적인 러시아인 상이 자주 나타나긴 하는데, 이 또한 러시아와 구분되는 우크라이나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방향은 아니고 타락한 서구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정교적 미덕을 기만하는 중심부 도시민의 풍조를 신심깊고 선량한 시골 사람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측면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훗날의 우크라이나 독립 문제는 고골의 관점으로는 조국을 약화시키려는 독일인(=[[갈리치아]] 등 우크라이나 서부를 장악한 오스트리아)을 위시한 서구의 분열책동과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유럽을 선망하여 러시아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를 쓰던 당대 러시아 제국의 귀족들을 비판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어로 창작활동을 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들 역시 비판하며 우크라이나어는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등 현대 우크라이나인들의 공분을 자아낼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작품세계가 원숙기에 접어들수록 러시아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며 근대적 러시아 국민의식의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고[* 그리고 이런 성향이 말년에는 본인이 그렇게도 비판하던 정교회와 차르 체제에 대한 순응으로 이어졌다. 차리즘과 정교회야말로 러시아 민족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므로.][* 다만 고골이 옹호하던 차리즘과 정교회는 현실의 차리즘과 정교회가 아니라 고골 식으로 이상화된 것이었기에, 당대 보수층의 시각에서도 맹렬히 비난당했다. 어찌보면 [[미시마 유키오]]와도 비슷한 흑화.], 1842년 발표된 대표작 타라스 불바의 개정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성향 탓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고골은 심하면 민족의 배신자로 취급되기도 했으나, 최근 우크라이나의 학자들은 고골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우크라이나적 특성을 부각시키며 그가 러시아어로 집필했던 소설들을 우크라이나어로 재편찬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당연히 러시아인들과 관련 학계에선 영 좋게 보지 않는다. 타라스 불바를 원작으로 [[율 브리너]]가 불바로 분한 1962년 영화는 원작 내용과 많이 다르긴 해도 명작이었는데, 원작 자체가 반 폴란드, 친 러시아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범러시아 민족주의의 아이콘 취급 받는 작품이다 보니 원작 반영 비율을 높인 2009년 리메이크 영화는 러시아의 [[환빠|우크라이나 공정]]을 연상시켜 관련국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